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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연구/음악학
김미옥: 수사학과 독일음악이론 [Rhetoric and German Music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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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과 독일음악이론


김 미 옥


낭만음악 2006 가을 제18권 제4호 통권72호, 5-30.



I. 머리말


르네상스 시대에 일어나는 고대 학문연구의 부활로는, 중세 후반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에 이어,1) 무엇보다도 수사학 저서들의 번역이 먼저 등장한다(III 참조).2) 그리고 수사학은 머지않아 언어교육뿐만 아니라 인본주의 교육 전반의 근본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는다.3) 그리고, 이런 변화와 병행하여, 16세기에는 음악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즉, 음악이 더 이상 전통적인 4분과학에 속하는 과학 또는 수학분야로서가 아니라, 실제적・실용적 학문인 수사학의 한 갈래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것이다.4) 젊은 인본주의자들이 차차 실제 음악의 표현력에 대해서도 관심을 쏟게 된 데서 비롯된 것인데, 이제 작곡가들은 처음으로 그들 자신을 창조자로 자각하기 시작했고, 특히 표현력 증대를 위해, 음악과 가사의 시너지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법 고안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한 노력은 이탈리아, 플랑드르, 프랑스, 독일 등 지역에 따라 독특한 성격을 보이는데, 그 가운데 독일의 독자성은 고대의 수사학과 작곡이론의 체계적인 접목이 시도되었다는 데 있다. 이와 같은 시도는 1530년대에 시작되고 뒤이어 강화된 후, 적어도 18세기 말까지는 그 명맥이 유지된다.5)

본고에서는 우선 고대의 수사학 이론과 이 이론이 특별히 독일음악이론에 접목되는 사회적・문화적 배경을 고찰한 다음, 독일음악수사이론의 발전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다.



II. 고대 수사학 이론


수사학은 원래 법정에서의 설득력 있는 화술의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그 기원은 기원전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인데,6) 곧 전인교육의 본질적인 요소 중의 하나로 취급되며 향후 5세기에 걸쳐 확고한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 핵심은 다음과 같이 다섯 순서로 되어 있다. 우선 ‘주제를 창안’하고(inventio), 그 다음으로는 주제의 요지를 논리적으로 ‘배열’(dispositio)한 다음, ‘문체’ 또는 ‘양식’(elocutio)을 결정하고, 그 내용을 ‘암기’(memoria)한 다음, ‘전달’(pronuntiatio)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둘째의 ‘배열’은 다시 다음과 같이 ‘서론’(exordium), 사실의 ‘서술’(narratio), 찬성과 반대 견해의 ‘제시’(partitio 또는 propositio), 주장의 ‘입증’(confirmatio), 반론에 대한 ‘논박’(confutatio), ‘결론’(conclusio 또는 peroratio)으로 세분화된다.

수사학의 다섯 순서 가운데 처음으로 정립된 것은, 그 기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주제의 창안’이 아니라 ‘배열’이었고 그 다음으로 도입되는 것은 고르기아스(Gorgias)를 비롯한 소피스트들에 의한 ‘문체’ 또는 ‘양식’이었다. 예를 들면 장중한 양식, 우아한 양식 등이 그것인데, 웅변가의 생각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주제의 특성에 맞는 양식적 언어를 구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간혹 특정 효과를 위해서는 일상적 원칙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것도 필요했다. 플라톤(Plato, BC. 427~347)은 주로 수사학의 부정적이고 인위적인 측면을 우려하는 데 그친 반면, 심리적・기교적 측면에서도 수사학을 연구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는 그것의 논리적인 배열뿐만 아니라 문체도 중요하게 받아 들였고,7)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제 창안’의 개념(주제[topici]와 그것의 저장소[loci] 개념: 각주 9 참조)도 수사학에 도입했다. 그는 ‘기억’이나 ‘전달’은 아직 부수적으로 취급했으나(전달의 요소로는 소리의 크기와 높낮이, 리듬을 고려했다),8) 이후 로마 제국의 문필가인 키케로(Cicero, BC. 106~43)와 M. F. 퀸틸리아누스(Marcus Fabius Quintilianus, 30~35년 경 활동)에 의해 다섯 순서가 체계적으로 정리된다.9) 그리고 이와 같은 과정 설정의 목적도 확대된다: 담론을 체계적으로 이끌어나감으로써 청자들을 설득(movere)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하거나(delectare) 교육을 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docere).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수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이미 아테네에 수사학파를 세운 이소크라테스(BC 546~338)에 의해, 웅변뿐만이 아니라 기록으로 전달될 수 있는 형태로도 뿌리를 내린다.10)

그 밖에 키케로와 퀸틸리아누스는 수사학에 대한 논의에 음악에 관한 이야기도 일부 포함시켰다. 키케로는 웅변가이며 정치가로서 『웅변술』(De oratore), 7권, BC. 87~44)이라는 제목의 연설자를 위한 실용적인 이론서를 남겼는데, 부분적으로는 음악가들도 고려한 이 저서에서 그는 음악가들이 과거에는 시인이기도 했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이와 같은 결합이 시에서 웅변술로도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웅변가의 감정적 완급을 조절해 주기 위해 장막 뒤에서 피리 주자가 웅변가를 보조해준 예도 들고 있다.11)

퀸틸리아누스는 로마의 수사학자로서, 한 세기 후의 음악이론가인 A. 퀸틸리아누스(그.Aristeidēs Koïntilianos, 영.Aristides Quintilianus, 그리스, 200년 경 활동)와 흔히 혼동되기도 하는 인물인데,12) 음악이론서를 쓰지는 않았지만, 12권으로 이루어진 그의 저서 『웅변학』(Institutio oratoria, 92~94)을 통해 음악에 대한 몇 가지의 중요한 견해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그는 음악의 마력적 힘을 인정하며, 잘 훈련된 연설가로서의 자격에 음악의 원리에 관한 지식, 즉 인간의 감정을 자극・완화시킬 수 있는 지식(‘언어의 음악화’: Musicalizaion of Speech)을 갖추는 것을 포함시켰다.13) 또한 새로운 점은 음악(라. musice)이란 용어가 현대적인 좁은 의미로 쓰이고 있고,14) 성악음악과는 별도로 기악음악의 리듬과 선율이 주는 정서적 영향력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언급되어 있다. 특정한 리듬 패턴에 의한 피리 연주에 의해 감정이 완화되고, 잠에 빠져들기 위해 특정 선율 연주를 주문했다는 일화 등이 그것이다.15)



III. 수사학과 독일음악이론 접목의 사회적․문화적 배경


15세기에 들어와 고대 연구 부활의 첫 수확으로 키케로와 퀸틸리아누스 등의 수사학 번역서들(각각 1416, 1422)이 등장하는 것을, 수사학이 고대의 교육 전반에서 근본적인 학문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볼 때, 우연으로 취급될 수만은 없는 일일 것이다. 이 번역서들은 곧 유럽 각지로 전파되면서, 역시 고대에서처럼, 차차 인본주의 교육의 근본 교재로 채택된다. 또한 수사학에서 음악에 관해 이야기한 키케로와 퀸틸리아누스는 15세기 후반의 음악이론서들에 언급된다.16)

그러나 예술에 대한 15세기의 인본주의적 시각은 아직 과학적 학문을 다루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17)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며 그 모방은 보편적 법칙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플라톤의 철학적 사고가 근본적으로 유지되고 있었고, 고대에 모방 대상이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실제의 음악에 대해서는 특히 표현에 관한 한 별로 새로운 연구가 없었다.18)

그런 음악 분야에서의 큰 전환점은 15세기 후반에 번영하기 시작한 플로렌스 메디치 가문(Medici Family)의 적극적인 예술후원으로 이루어진다. 즉 젊은 인본주의자들이 비로소 예술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로 표현력 있는 작품과 연주 실제에 대해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이다.19) 이런 변화는 음악을 또 다른 언어로서 수사학의 한 부류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에도 그대로 반영되는데, 당시의 음악이 근본적으로 가사를 가진 성악음악이었고, 수사학이 인본주의 교육의 지배적인 요소였던 것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변화가 바로 음악과 수사학 이론의 접목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음악이론적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의 작곡가들(또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바 있는 플랑드르 작곡가들) 중 일부는 그 전통을 바탕으로 매우 급진적인 화성적 진행이나 임시표 사용 등을 가미하는 등 표현력을 증대하려는 실험들을 감행했고, 또한 그런 사용을 음악이론적으로도 정당화하려는 논의도 병행한다.20) 보수적 전통이 지배적이었던 프랑스는 그러한 급진적인 변화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인문주의의 입장에서 고대 시를 본 딴 박절적 운율을 만들고 여기에 길고 짧은 두 가지의 음악적 리듬을 붙이는 시도 등을 지엽적으로나마 보여주었다.21)

그렇다면 음악적 실제와 이론 모두에서 이들 나라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낙후한 상태였던 독일에서는 어떤 현상이 일어났을까?22) 당시 독일에서의 어떤 변화를 가능하게 한 에너지는 음악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과 재능이 있었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교회음악정책이었다. 그가 회중을 위한 단순한 구조의 찬송가뿐만 아니라 새로운 양식의 다성음악도 교회에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로는 연주자들을 다른 한편으로는 작곡가를 양성하는 후원정책도 차차 정착되었던 것이다.23) 이렇게 작곡가를 정책적으로 양성하게 된 것 자체도 매우 독특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또 다른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다. 첫째는, 음악작곡 자체가 음악이론의 새로운 갈래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게 된 것이다(‘시학’[poetica]의 부활: 각주 7 참조).24) 둘째는, 여기에 수사학 이론이 폭넓게 접목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이탈리아 이론서 등에서 전통적인 대위법과 선법 이론 등을 차용하는 것만으로는 당대의 표현력 있는 새로운 작곡기법 교습을 포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음악을 당시 모든 교육의 근본이던 수사학 이론의 한 갈래로 인식하기 시작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음악수사이론은, 독일적인 것으로 여겨질 만큼, 전통을 이어나간다.



IV. 독일 음악수사이론의 발전과 쇠퇴


독일 음악수사이론은 음악(근본적으로 성악음악)을 논리적이면서도 표현력 있게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작곡이론이라고 볼 수 있는데,25) 그 이론의 변화과정을 크게 정립, 변화, 쇠퇴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 정립


독일 음악수사이론의 정립 시기는 1530년대부터 1600년대 초로 볼 수 있고, 그에 공헌한 이론가로는 세 사람을 들 수 있다. 그 첫째인 니콜라우스 리스테니우스(Nikolaus Listenius, 1510년경 생)의 중요성은, 『음악』(musica, 1537)에서 ‘음악시학’(Musica poetica)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등장시킨 정도에 불과하지만, 작곡을 창작 행위로 인식하게 된 것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이후 1563년에는 이 용어가 이론서의 제목 자체로 나타난다. 두 번째 인물인 갈루스 드레슬러(Gallus Dressler, 1533~1580년대)의 『음악시학 개론』(Praecepta musicae poeticae)이 그것인데, 그는 전통적 대위법과 선법이론의 소개와 함께, 시학과 수사학의 접목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성악음악의 구조에 고대 수사학에서의 ‘배열’을 적용한 것이다. 단 6가지가 3가지로 축소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마지막 2가지는 용어도 바뀌어 있다: ‘시작’(exordium), ‘중간’(medium), ‘끝’(finis).26) 그 밖에 음악과 관련된 수사적 언급으로는, 음악의 시작이 첫줄에 주제가 오는 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중요하고, 곡의 중간에도 구조에 적합한 음이 선택되어야 한다고 설명한 것이 있다. 그리고 지엽적이기는 하지만, 수사학의 ‘문체’에 해당될 수 있는 언급으로서 음계에서의 음도음들을 특정한 성격과 관련지은 것이 있다: 음계의 1, 5, 8도음은 즐거운 반면, 2, 4, 6도음은 슬프고, 3, 7도 같은 음들은 짓궂고 거칠다고 부언했다.27) 이와 같이 고대에서처럼 ‘배열’ 이론이 먼저 등장하고, 뒤이어 ‘문체’가 고려되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 번째이며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음악이론가인 요아힘 부어마이스터(Joachim Burmeister, 1564-1629)는 『음악시학』(Musica poetica, 1606)에서 ‘배열’뿐만 아니라 ‘문체’에 대해서도 중요한 진전을 마련한 것으로 유명하다.28) 배열에 관해 다룬 것은 오를란도 디 랏소(Orlando di Lasso, 1532~1594)의 모테트(In me transierunt) 분석인데,29) 단순하기는 하지만, 음악 한 곡 전체를 대상으로 실제적 분석을 시도한 것은 이것이 처음인 것으로 추정된다(총 16장 중 제15장에 포함되어 있다). 그는 그와 같은 분석의 목적이 초보자들을 가르치고 모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부언하면서, 이 모테트의 선법과 다성음악의 유형, 선율적 특성을 먼저 고찰한 다음, 전체를 9개의 악절로 세분하고 ‘배열’에 해당하는 3부분의 수사학적 구조를 적용했다: 시작(exordium), 노래의 본체(ipsum corpus carminis), 끝(finis).30) 가운데 부분에 해당하는 용어가 약간 다르게 변했지만, 이와 같은 배열은 이미 드레슬러가 제시한 것이다.

이보다 흔히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그의 공헌은 ‘문체’에 해당되는 것이다. 구조에 대한 장식으로서의 음형이 그것이다. 그는 기존의 음악에서 추려낸 음형들을 화성적인 것, 선율적인 것, 화성적이면서 동시에 선율적인 것의 3가지로 체계화하고, 음형들을 그와 같은 문맥에 따라 최초로 이론화 했다(제12장에 다루어져 있다). 모두 27가지인데(16개의 화성적 장식, 6개의 선율적 장식, 그리고 양쪽에 속하는 것 4개),31) 그는 랏소 모테트 분석의 마지막 단계로서도, 각각의 악절 안에 포함되어 있는 음형들을 이 체계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32) 그러면, 부어마이스터는 왜 원래 6단계에 해당하는 ‘배열’ 대신 (여전히 드레슬러를 따라) 축소된 3단계를 적용시킨 반면, 음형이론에 대해서는 큰 비중을 두었을까? 그 해답은 랏소의 모테트와 또 그가 인용한 다양한 악보 예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이 모테트뿐만 아니라 음형 체계를 설명하는 악보 예들의 대부분도 랏소의 모테트들에서 발췌했고,33) 이것들을 포함하는 모든 예들은 사실 독일 작곡가 또는 독일에서 거주했던 작곡가들의 것으로서(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곡가들도 많다), 음악적 구조는, 전체적으로 매우 단순한 편이다.34) 즉, 구조적으로는 다양하게 논의할 만한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런 단순한 구조에서의 음악적 표현력의 증대를 위한 방편으로 ‘문체’에 해당하는 수식적 음형에 집착했다기보다는, 악곡 분석의 근본적인 취지 자체도 사실은 특정한 음악적 문맥에서의 ‘문체’를 학습하기 위한 전제라고까지 해석할 수 있다. 랏소의 모테트는 전반적인 단순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표현적인 진행으로 당대와 그 이후까지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35) 다음은 그 가운데에서도 극단적인 예로 꼽히는 것으로서, 도합 12곡의 모테트로 되어 있는 <예언자의 금언>(Prophetiae sibyllarum) 시리즈 중 한 곡의 시작부분이다.


<악보 예 1> 랏소의 모테트 “Carmina chromatico”, 마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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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예는 9마디에 달하는 곡의 시작 부분에서 12음이 모두 나타나는 매우 독특한 진행을 보여주는데, 이와 같이 조성에 속하지 않는 반음들의 사용도 부어마이스터와 이후의 이론가들에 의해 중요한 표현적 음형의 하나로 취급된다.

부어마이스터의 음형들 가운데 대다수는 불규칙적인 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거나 정당화시키기 위한 것들이었는데, 그는 이와 같은 음형들에 대부분 그리스어로 된 고대 수사학 용어를 적용시켰다.36) 다음은 그 음형목록과 그것에 대한 음악적 특징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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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어마이스터의 음형들은, 이후의 이론가들에 의해 도합 200개 이상으로 첨가・확대되고 그 분류방법도 다양해짐에 따라, 근래에는 그 많은 음형들의 특징들을 포괄해서 볼 수 있는 방법이 시도되었다.37) 그 방법과 그에 따라 부어마이스터의 음형들을 대입시켜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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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어마이스터의 음형이론은 미카엘 프레토리우스(Michael Praetorius, 1571 ~1621)의 『음악이론 집성』(Syntagma Musicum, 1619), 아타나시우스 키르허(Atanasius Kircher, 1601~1680)의 『범세계적 음악박물관』(Musurgia universalis, 1650, 소제목으로 수사학[Musurgia rhetorica] 부분이 포함됨), 요한 헤릅스트(Johann A. Herbst, 1588~1666)의 『음악시학』(Musica poetica , 1643) 등으로 이어진다.40) 요한 리피우스(Johannes Lippius, 1585~1612)의 『신음악 개요』(Synopsis musicae nova, 1612)는, 음형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으나, ‘배열’만이 아닌 고대 수사학에서의 5부분 전체를 처음으로 음악과 연관 지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혀 그에 대한 세부적 논의가 없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반감된다.41) 그리고 사실, 작곡이론에 관련된 것으로는 ‘주제의 창안’ 개념이 명목상으로 보완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암기’와 ‘전달’은 연주 영역). 독일 이외에, 프랑스에서도 마랭 메르센느(Marin Mersenne, 1588~1648)의 『보편적 화성이론서』(Harmonie universelle, 1636 ~1637)가 음형이론을 다룬 것으로 처음 나타나기는 하나, 깊이나 비중은 거의 없다(각주 5 참조).42)


2. 변화


부어마이스터 이론의 전승과 병행하여, 차차 그 이론을 새롭게 각색한 것들도 등장한다. 17세기 중반에는 새로운 분류 방법의 도입과 함께, 전혀 다른 내용의 음형들이 소개되기도 하고, 18세기로 가면서는 ‘배열’과 ‘음형’보다 ‘주제의 창안’이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되기도 한다. 대표적 이론가는 17세기 중반의 크리스토퍼 베른하르트(Christoph Bernhardt, 1628~1692)와 18세기 전반의 요한 마테존(Johann Mattheson, 1681~1764)이다.

베른하르트의 『작곡 교본』(Tractatus compositionis augmentatus, 1657)은 음악시학이란 용어 대신 작곡이란 말이 사용되는 것이 새로운데, 수사학 이론도 여전히 음형 중심의 이론이기는 하나 부어마이스터의 그리스 용어 대신 라틴어로 명명되어 있고 순수음악적 용어들도 새롭게 많이 수용되어 있다(transitus[경과음], syncopatio[계류음] 등). 그 밖에, 음형의 분류 방법도 부어마이스터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적용되어 있다. 즉 세 가지 양식에 따라 세분화되어 있는데, 당대의 음악적 ‘문체’를 고려한 것으로서, 독일에서의 이탈리아 음악양식의 이론적 흡수를 반영하는 것이다.43) ‘스틸레 그라비스’(style gravis: 제1작법에 해당), ‘스틸레 룩주리언스 콤무니스’(style luxurians communis: 제2작법의 교회양식), ‘스틸레 룩주리언스 테아트랄리스’(style luxurians theatralis: 제2작법의 극장양식)가 그것인데, 마지막의 두 양식은 첫째 양식의 장식으로서 특히 불협화음적 특징이 많이 강조되어 있다.44) 다음은 그 음형목록과 그것에 대한 음악적 특징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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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의 음형은 부어마이스터의 것과 개수에서는 별 차이가 나지 않으나, 명칭과 내용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즉 같은 내용의 것은 2개(** 표시)에 불과하고, 비슷한 것으로 취급될 수 있는 것도 5개에 불과하다. 전체적으로 불규칙적인 불협화음(정)의 진행이나 처리에 관한 것이 압도적이고, 대위법적 모방양식의 선율적 음형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그 밖에 긴 음이 즉흥적으로 짧게 쪼개지는 장식적 진행도 음형에 포함되어 있는데(variatio), 이탈리아의 17세기 독창음악에서 유행하던 것(passaggio)으로서 연주영역인 ‘전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여기서는 작곡기법으로 흡수되어 있다.

마테존은 이전 음악이론가들의 수사학적 논의를 새로운 단계로 확대・전환시킨다(『완전한 악장』[Der vollkommene Capellmeister], 1739). 음악에 전체적인 수사학적 진행구조(다섯 부분과 배열의 세부적 여섯 부분)를 체계적으로 적용한 것(그러나 세부적으로 수사학적 용어보다는 문법적 용어를 악구 등에 적용), 그리고 그 대상을 성악음악 뿐만이 아니라 처음으로 기악음악으로도 확대시킨 것이 그것이다.45) 기악음악도 성악음악과 마찬가지로 선율이 근본인 음악이라는 로코코적 발상에서 출발된 것이기는 하지만,46) 그와 같은 전환이나 확대는 가사를 갖고 있지 않는 기악음악의 새로운 위상에 따른 자연스러운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전통적인 음형들에 대해서는 선율의 표현력과 관련하여 짧게 언급된 데 불과한 반면, ‘주제 창안’ 개념에 대해서는 새롭게 큰 비중이 주어진 것도 그와 같은 시도를 반영한다. 그는 십여 년 전에 이미 요한 하이니헨(Johann D. Heinichen, 1683~1729)이 설명한 바 있는 ‘주제 창안’과 관련된 고대의 ‘주제 저장소’(loci topici: 각주 9 참조)를 12종류로 확대시켰을 뿐만 아니라(즉, 12개의 저장소),47) 이러한 확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개념 자체를 넘어서는 단계까지 암시하고 있다. 즉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주제를 스스로 창안해낼 수 있는 상상력과 (주관적인) 재능이 더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3. 쇠퇴


마테존에 의해 확대・전환되는 음악수사이론은 전통적 이론의 핵심이었던 음형이론의 축소와 기악음악에 대한 새로운 관심표명 등과 함께 그 전통이 쇠퇴되기 시작함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18세기 중후반으로 가면서는, 차차 정형화된 수사학적 기법에 의한 서술적 전달보다 다양한 감정적 ‘동요’의 직접적인 표출이 이상화되면서(특히 독일의 감정과다성[Empfindsamkeit]과 질풍노도[Sturm und Drang]의 경향에서 강조됨), 그 이론의 쇠퇴는 더욱 가속화된다. 이런 경향은 C. P. E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 찰스 애비슨(Charles Avison, 1709~1770) 등의 음악가뿐만 아니라, 귀 드 샤바농(Michel-Paul Guy de Chabanon, 1730~1792), 샤를르 바뙤(Charles Batteux, 1713~1780), 요한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 1744~1803)와 같은 미학자나 시인들에 의해서도 폭넓게 주장된다.48)

이와 같은 대세의 다른 한편으로, 18세기 후반에 마테존의 수사학이론을 전승・확대한 학자들로는 요한 술처(Johann G. Sulzer, 스위스 태생, 1720~1779)와 요한 포르켈(Johann Nikolaus Forkel, 1749~1818) 등을 들 수 있다. 술처는 『예술이론 개론』(Allgemeine Theorie der schönen Künste, 1774)에서 수사학적 진행구조 중 첫 세 단계를 독일어 명칭으로 바꾸어 음악을 비롯한 예술 전반에 적용했고(Erfindung, Anlage, Ausarbeitung),49) 포르켈은 마테존의 수사학적 방법을 거의 그대로 소나타 형식을 포함한 다양한 형식의 음악에 적용하고자 했다(『음악의 일반사』[Allgemeine Geschichte der Musik], 1788~ 1801).50) 그러나 19세기부터는 거의 모든 교육과 음악 분야에서 수사학이 사라진다.


V. 맺음말


음악수사이론은 다른 나라들에 비할 바 없이 음악적 실제와 이론 모두 낙후했던 16세기 독일이 중심이 되어 그런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작곡교육과 관련하여, 이탈리아 이론서 등에서의 전통적인 대위법과 선법 이론 등의 차용을 바탕으로 당대의 새로운 표현기법을 습득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당시 모든 교육의 근본이었던 수사학을 당대에 역시 수사학의 한 갈래로 인식되기 시작한 음악에 접목하여 음악에서의 표현력을 효율적으로 주지・이해・증대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독일 음악수사이론에서는 음형이론이 과도한 비중을 가진 불균형적인 것으로 발전되면서, 작곡의 본질적인 향상에 한계를 만들게 된다. 구조적으로는 다양하게 논의할 만한 여지가 없을 만한 매우 단순한 음악이 대상이었던 데 반해, 이것을 수식할 수 있는 표현적 음형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다양하고 체계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작곡가들의 저력이 미약했던 초기에는 그와 같은 불균형의 관계가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상황은 17세기에 들어서도 독일을 30여 년 동안 휩쓴 전쟁으로 인해 오랫동안 극복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상황이 17세기 중엽부터 서서히 극복되는 과정은 음형이 당대의 다양한 양식적 문맥에서 고찰되고, 음형 자체보다 주제의 창안이나 전체적 구조가 차차 중요하게 다루어지며, 음형의 명칭이 고대의 수사학적 용어에서 독일어나 음악용어 또는 이 두 가지의 결합으로 이동되는 데서 살펴본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18세기 초반부터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 즉 이미 판에 박힌 음형이나 기법에 의한 음악적 표현이 인위적이고 진부한 것이라는 사고와 가사가 없는 기악음악의 격상은 순수 음악적 특질로서의 표현력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필요로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음형이론을 포함하는 음악수사이론 자체를 쇠퇴시킨다. 그러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음악의 위력에 대한 근원적인 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이 이론이 그 한계를 넘어 순수 기악음악에서의 주관적 표현력의 발판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각주

1)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은 중세 후기인 13세기에 라틴어로 번역・연구되기 시작한다. 박영도 번역(Rev. Frederick Charles Copleston 저), 「토마스 아퀴나스

2: 철학과 신학」, 「성 토마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논쟁」, 『중세철학사』(서울: 서광사, 1988), 402-415, 539-551 참조. 2) 수사학은 말 또는 글을 논리적이면서도 표현력 있게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학문으로서, 웅변술(라.oratore, 영.Oratory)이 그 대표적인 분야에 속한다.

3) Patrick McCreless, “Music and Rhetoric”, in The Cambridge History of Western Music Theory, ed. Thomas Christensen(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2): 850.

4) Nino Pirrotta, “Music and Cultural Tendencies in 15th-Century Italy,” JAMS 19(1966): 138.

5)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도 그와 같은 관계를 다룬 경우가 나타나나, 근본적인 이론적 논의가 없는 피상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17세기 영국의 찰스 버틀러(Charles Butler, 1560~1647; Principles of Musik, 1636)와 프랑스의 마랭 메르센느(Marin Mersenne, 1588~1648; Harmonie universelle, 1636~1637) 등이 그 예이다(메르센느는 본고의 IV-1 참조). 6) 고대 수사학의 기원은 BC. 495년경에 그리스 영토(시실리)에서 처음 등장한 재산권에 대한 법적 논쟁이었다. 김현, 『수사학』(서울: 문학과 지성사, 1992), 19ff; George A. Kennedy, Classical Rhetoric and Its Christian and Secular Tradition from Ancient to Modern Times(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980), Chap.1.

7)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술』(Téchne rhetorike), BC. 335경)에서 연설을 보고체적인 것(genus indiciale), 숙고적/정치적인 것(genus deliberativum), 그리고 축사(祝辭) 같은 예식적인 것(genus demonstrativum)으로 세분화했는데, 이 세 번째 것은 시학(시의 작법)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서 예술적 산문의 발전에 기초가 되었다(그는 『시학』[Téchne poietike]의 저자이기도 하다). George A. Kennedy, ibid.

8) 그와 같은 분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수사학자 이소크라테스(Isocrates, BC. 436~338)의 이론을 따른 것이다. Don Michael Randel, The New Harvard Dictionary of Music(Cambridge, MA: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1986), 699.

9) 퀸틸리아누스는 주제의 창안에 대해, ‘논쟁의 저장소’(sedes argumentorum)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즉, 주제는 그때그때 창안되는 것이 아니라, 저장소에서 적절한 것을 선택한다는 것인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제’와 ‘저장소’ 개념을 한 단계 더 뚜렷하게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0) Patrick McCreless, “Music and Rhetoric”: 849.

11) Ruth Halle Rowen, Music Through Sources & Document(NY: Prentice-Hall, 1979), 30-32.

12) A. 퀸틸리아누스는 피타고라스학파에 속하는 음악이론가로서, 『음악론』(그. Peri mousikēs, 영. On Music, 3권, 2세기 경)을 남긴 바 있다. 김미옥, 「원전연구를 통해 본 고대의 음악이론」, 『연세음악연구』7(2000): 41-42 참조.

13) Piero Weiss, and Richard Taruskin, ed., Music in the Western World: A History in Documents(NY: Schirmer Books, 1984), 12.

14) 원래 무지케(mousikē)란 말은 예술과 학문(시, 춤, 역사 등)을 관장하는 아홉 명의 그리스 여신 이름 ‘무사’(Musa)의 기술(téchne)이란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고대에서 음악이란 말은 예술을 총체적으로 언급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러 예술분야 가운데 특히 시와 불가분의 관계였다.

15) Piero Weiss, and Richard Taruskin, ed., Music in the Western World: A History in Documents, (NY: Schirmer Books, 1984), 12.

16) 요하네스 팅토리스(Johannes Tinctoris, 플랑드르 출신, 이탈리아에서도 활동, 1435경~ 1511경)는 『대위법 이론서』(Liver de arte contrapuncti, 3권, 1477)의 제8대위법 규칙에서 ‘하모니’의 다양성과 키케로가 말한 전달기법의 다양성을 연결시키고 있다(제III권, viii).

17) 삼호출판사 역(F. Blume 저), 『르네상스와 바로크 음악』(서울: 삼호출판사, 1986), 18. 미술을 예로 들면, 르네상스 초반에 원근화법이 도입된 이래, 좀 더 과학적인 원근화법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투시화법이 이론화되기 시작한다(기하학이 적용됨). 주영희, 「르네상스 회화와 투시기하학」, 『미학』 8(1982): 69.

18) 1431년에 즉위한 교황 유제니우스 4세(Eugenius IV; 1447년까지 봉직)가 단성음악만을 장려하는 엄격한 종교음악정책을 편 것도 실제의 음악활동이 한 동안 위축된 원인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Nino Pirrotta, “Music and Cultural Tendencies in 15th-Century Italy,” 135. 실제 음악에서는 유지니우스 교황 이전의 이탈리아 음악 중 소수(요한네스 치코니아[Johannes Ciconia, 1335경~1411]의 <오 아름다운 장미여>[O rosa bella] 등)와 역시 그 이전에 이탈리아에 와 활동한 플랑드르 출신 작곡가들의 작품(기욤 뒤파이[Guillaume Dufay, 1400~1474])의 모테트 <최상의 인간>(Supremum est mortalibus 등)에서 가사를 부각시키거나 그 의미 투영을 위한 시도들이 다소 뚜렷하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직 고립된 예제들에 불과하다.

19) Nino Pirrotta, “Music and Cultural Tendencies in 15th-Century Italy,” 138.

20) 가장 급진적인 이탈리아 작곡가/이론가로는 니콜라 비첸티노(Nicola Vicentino, 1511~ 1576)를 들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아방가르드’라고 불리기도 할 만큼 급진적이었던 그는 작곡가를 웅변가로 여기며, 청자에 관해서는 적절한 청취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즉, 교육을 받은 청자라야 음악에서의 의도적인 규칙의 파괴를 문맥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옛 음악의 현대적 적용』[L’antica musica ridotta alla moderna prattica], 1555). Nicola Vicentino, Antica musica ridotta alla moderna prattica(Rome: A. Barre, 1555)의 번역본 Maria R. Maniates, trans., Ancient Music Adapted to Modern Practice(New Haven: Yale University, 1996), 86(제2권, 제1장), 254(제4권, 제21장).

21) 16세기 후반의 대시인 장 앙트완느 바이프(Jean-Antoine Baïf, 1532~1589)가 그 당사자로서, 1570년에 ‘시와 음악의 아카데미’(Academie de Poésie et musique)를 설립했다. 작곡가로는 클로드 르 죈(Claude le Jeune, 1530경~1600경) 등이 있다.

22) 독일에서는 다성음악이 15세기 초에야 발전되기 시작했고, 그 음악들의 경우에도 외국 노래의 가사만을 독일어로 바꾼 ‘콘트라팍툼’(Contrafactum)이거나 또는 최상성부나 중간 성부에 기존의 단성 노래를 놓고 그 주위에 반주를 덧붙인 경우가 많다. 기록은 15세기 후반에야 이루어진다: 『로캄의 노래집』(Lochamer Liederbuch, 1455~1460경), 『쉐델의 노래집』(Schedelsches Liederbuch, 1460년대), 『글로가우의 노래집』(Glogauer Liederbuch, 1470~1480).

23) Patrick McCreless, “Music and Rhetoric”, 853. 독일에서 16세기 전반에 활동한 대표적인 작곡가는 플랑드르 악파의 하인리히 이삭(Heinrich Isaac, 1450경~1517)과 그 제자인 스위스 태생의 루드비히 센플(Ludwig Senfl, 1490경~1543) 등이다,

24) 특히 독일에서의 16세기 이전의 작곡에 대한 개념은 고정선율 위로 이것과 음정관계를 맞추어 선율(들)을 만들어 내거나 고정된 형식에 들어맞게 음악을 ‘제작’해 내는 ‘기술’이었으나, 이제는 창작의 개념이 도입되기에 이르렀으며, 그에 따른 새로운 기법의 논의도 필요하게 된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방식으로 전환).

25) 19세기의 독일 음악이론가들은 독일 음악수사이론에 ‘감정이론’(Affektenlehre)이란 용어를 적용했는데 이후 널리 쓰이게 된다. 음형이론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정이론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흔히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26) 『음악시학 개론』, xlvii-xlviii; Stanley Sadie, ed.,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261-262. 이 이론서는 제1~8장의 기초적 대위법 이론, 제9~14장의 그 이론의 적절한 사용을 통한 작곡기법(음악시학에 관한 것), 제15장의 요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27) 특정 선법이나 음정 등의 표현효과에 대한 언급 자체는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고대에서는 플라톤이 선법과 관련하여 언급한 바 있다. 김춘미, 「플라톤의 『국가』와 음악」, 『음악학의 시원』, 88. 중세에는 11세기부터 선법의 음악적 표현력에 대한 이론이 재등장하는데, 이 경우에는, 당시의 노래들이 선법에 따라 전형적인 선율적 특징도 갖고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중세에 선법의 음악적 표현력에 대해 처음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 이론가는 귀도 다렛조(Guido d’Arezzo, Pomposa, 이탈리아, 991/992년경~1033년 이후)이며, 이후 그의 제자인 아리보(Aribo Scholasticus, 1068~78년경 활동)를 비롯한 여러 이론가들의 저서들에서 흔히 나타나게 된다. 김미옥, 「원전연구를 통해 본 중세 초중기의 음악이론」, 『서양음악학』 6(2003): 268. 16세기 후반의 대표적 이론가인 지오세포 짜를리노(Gioseffo Zarlino, 1517~1590)와 니콜라 비첸티노(Nicola Vicentino, 1511~1576) 등은 장음정을 즐거움의, 단음정을 슬픔의 유발에 효과적인 것으로 본 바 있다. Gustave Reese, Music in the Renaissance(NY: W. W. Norton, 1959), 328.

28) 그는 1599~1606년에 걸친 세 권의 저서에서 그와 같은 진전을 보였는데, 그 중 마지막 저서가 『음악시학』이다. 앞의 2권은 『음악작법 노트』(Hypomnematum Musicae poeticae, 1599)와 『음악의 메모』(Musica autoshediastike, 1601).

29) 부어마이스터의 분석에 대한 주석은 Claude V. Palisca, “Ut oratoria musica: The Rhetorical Basis of Musical Mannerism”, in The Meaning of Mannerism, ed. Franklin W. Robinsona and Stephen G. Nichola, Jr.(Hanover, NH: University Press of New England, 1972), 37-65 참조.

30) Joachim Burmeister, Musical Poetics, 201.

31) 그러나 부어마이스터는 『음악시학』에서 음형의 개수를 확정할 수는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xxiv).

32) Claude V. Palisca, “Ut oratoria musica: The Rhetorical Basis of Musical Mannerism”: 41-57; Joachim Burmeister, Musical Poetics, 204-207.

33) 그 개수는 제1권(각주 28 참조)에서는 25/29, 제2권에서는 61/82, 그리고 제3권인 『음악시학』에서는 51/70이다. 음악이 인용된 작곡가로는 랏소와 클레멘스 논 파파(Clements non Papa[Jacob Clement], 1510년경~1556년경), 기아케스 데 베르트(Giaches de Wert, 1535-1596) 외에 현재 잘 알려지지 않은 7명이 독일 작곡가들이 더 있다(모든 예는 라틴어 모테트에서 발췌된 것).

34) 랏소는 플랑드르 제4세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지만, 청년기에는 이탈리아에서 활약하고 후에는 남독일의 뮌헨에서 궁정악장으로 활동하였다. 망명예술가로서 생활한 것이다. 물론 많은 플랑드르 작곡가들이 고향과 외국을 오가며 활동했지만, 가톨릭 신자들의 경우에는, 종교적 상황으로 인해, 16세기 후반에는 돌아갈 고향을 잃어 버렸다. 작품은 2천 곡이 넘고, 특히 세속노래의 장르에서는 샹송, 독일어 노래, 마드리갈 등 레퍼토리가 다양하다. Howard M. Brown & Louise K. Stein, Music in the Renaissance, 2nd ed.(NJ: Prentice Hall, 1999), 296; Patrick McCreless, “Music and Rhetoric”, 860 참조.

35) 랏소의 미사가 대부분 패로디로서 단순함에 그치는 것이라면, 그의 모테트는 긴장감 있는 호모포니이다. 모방적 진행도 이에 가까운 것이 많다. 랏소의 모테트들(그 가운데 특히 참회적 내용의 모테트틀)은 매우 표현적인 것으로서 신교와 구교 양쪽에서 매우 선호되었던 것들이다. 『참회의 시편가』(Psalmi Davidis poenitentiales, 7곡, 1584년 출판). Maria R. Maniates의 Mannerism in Italian Music and Culture, 1530~1630(Chapel Hill, NC: University of Northern Carolina Press, 1979), 120 참조.

36) 그리스어가 아닌 것으로는 ‘symblema’ 등이, 그리스어도 수사학적 용어도 아닌 것으로는 fuga, supplementum, fauxbourdon 등이 포함되어 있다.

37) Stanley Sadie, ed.,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2nd ed.(Washington, DC: New Grove Dictionaries, 2001), s.v. “Rhetoric and Music”, by George J. Buelow et al, 264-268. 르네상스 후반의 음악이 전반적으로 성부들 간의 모방적 구조를 특징으로 한 것을 고려하면, 구조적 특징을 염두에 둔 분류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39) 즉, 가사의 말이나 내용을 회화적으로 묘사(Tone Painting)하는 음형을 말한다.

40) 『음악이론 집성』 이후의 독일음악과 음악연구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30년 전쟁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다. 아타나시우스 키르허는 독일음악학자로서 프랑스로 망명을 한 신부이다(그의 저서는 작곡가보다는 학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41) Patrick McCreless, “Music and Rhetoric”, 854.

42) Patrick McCreless, “Music and Rhetoric”, 852. 음악의 표현력 연구와 관련된 색다른 시도로는 메르센느와 동시대인으로서 동료이기도 했던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정념론』(Traité des passions de l’âme, 1649)을 들 수 있다(여기서의 ‘passion’은 이탈리아의 affetto와 독일어의 affekt에 해당하는 말이다: 각주 43 참조). 그는 음악이 모방해야 할 구체적인 대상으로서의 ‘감정’을 객관화・체계화시키고자 했다. 즉, 그는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감정(Emotion)을 외적 자극에 의한 내적 반응(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적 현상들, 수동적인 지각과 객관적으로 범주화된 인간의 합리적 반응[신체의 보존과 완전성을 위해 필요한 행위] 등)으로서의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로 정의・분석했는데(경이감, 사랑, 미움, 욕망, 슬픔, 기쁨), 단, 음악과 실제적으로 관련된 설명은 거의 없다(합리적인 방법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생각). N. Anderson, Baroque Music: From Monteverdi to Handel(London: Thames and Hudson, 1994), 10-11. Piero Weiss, and Richard Taruskin, ed., “The Doctrine of the Affections [by Descartes]”, in Music in the Western World: A History in Documents, 212-217,

43)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에 이어 바로크 시대에도 이론보다는 주로 실제 음악을 통해 극적인 가사표현을 위한 실험을 계속했다(오페라의 탄생과 초기 발전). 그 궁극적인 목적은 물론 청자의 감정(이.affetto, 도.Affekt, 영.Affect)을 움직이기 위한 것이었는데, 작곡가가 웅변가로 상징되기는 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연주자의 역할(수사학에서의 ‘전달’로 볼 수 있는 것)도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었다(즉흥연주 기법 등이 그 예이다).

44) Patrick McCreless, “Music and Rhetoric”, 852.

45) Johann Mattheson, Der Vollkommene Capellmeister(Hamburg: Christian Herold, 1739); Ernest Charles Harriss, “Johann Mattheson’s Der Vollkommene Capellmeister: A Translation and Commentary”(Ph.D. diss., George Peabody College for Teachers, 1969), 469-484.

46) 그는 기악음악을 일종의 ‘음향언어’(Klang-Rede)로 보았다. Ibid. 마테존에 앞서, 선율적인 음악에 대한 관심을 보인 독일이론가로는 볼프강 프린츠(Wolfgang Printz, 1641~1717)가 있다: 『고귀한 성악과 기악음악에 관한 역사 기술서』(Historische Beschreibung der edlen Sing̶und Klingkunst): 1690)에서 음형에 관한 것은 선율적인 것에만 초점을 두었다. Patrick McCreless, “Music and Rhetoric”, 868. 마테존과 동시대인으로서 이론가・작곡가・비평가인 요한 샤이베(Johann A. Scheibe, 1708~1776)도 기악음악이 정서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성악음악의 모방이라고 생각했다. 즉, 음형들은 그 의미가 객관화됨에 따라 성악음악뿐만 아니라 기악음악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George Buelow, “In Defence of J. A. Scheibe against J. S. Bach”, PRMA 101(1974~75): 85ff.

47) 그는 『완전한 악장』 제2부의 4~14장에 그 설명을 포함시켰다. Ibid., 281-484. 하이니헨은 『계속저음 작곡법』[Der General-Bass in der Composition], 1728)에 주제의 저장소를 상황적인 것(locu circumstantiarum)에 국한시켰다. G. J. Buelow, “The ‘Loci topici’ and Affect in Late Baroque Music: Heinichen’s Practical Demonstration”, MR 27(1966): 162.

48) C. P. E. 바흐는 음악이 개인적인 경험의 표현이고, 따라서 영혼으로 연주해야 한다고 보았다. C. P. E. Bach, Essay on the True Art of Playing Keyboard Instruments, trans. & ed. William Mitchell(NY: W. W. Norton, 1949), 449; 그런 경향과 관련된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애비슨의 『음악적 표현에 관한 소고』(An Essay on Musical Expression, 1753), 샤바농의 『음악과 어휘, 언어, 시 그리고 연극에 관한 고찰』(De la Music, considérée en elle-même et dan ses rapports avec la parole, les langues, la poésie, et les théâtres, 1785), 바뙤의 『동일한 원리로 환원되는 미적 예술들』(Les beaux arts réduits à un même principe, 1746), 헤르더의 『네 번째의 비판적인 작은 숲』(Viertes kritisches Wäldchen, 1769). 한독음악학회 편, 『음악미학텍스트』(부산: 세종출판사, 1998), 52ff, 111ff, 123ff 참조.

49) 하인리히 코흐(Heinrich Koch, 1749~1816)도 독일어 용어를 제시했는데, 술처와는 조금 다르다(Versuch einer Anleitung zur Composition, 1782~1793): Anlage, Ausführung, Ausarbeitung.

50) 한독음악학회 편, 『음악미학텍스트』, 12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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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 “Rhetoric and Music”, by George J. Buelow et al, 260-275.

Weiss, Piero, and Richard Taruskin, ed. Music in the Western World: A History in Documents. NY: Schirmer Books, 1984.


<한국어 요약>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와 고대 연구 부활의 첫 수확으로 등장하는 것은 수사학 번역서들이고, 이것들은 차차 인본주의 교육의 근본 교재로 채택된다. 이와 관련하여, 전통적으로 4분과학의 과학 또는 수학분야에 속했던 음악도 16세기 초에는 실제적・실용적 학문인 수사학의 한 갈래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음악에서도 실제적인 표현력이 중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곡가들은 자신을 창조자로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음악과 가사의 시너지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법 고안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러한 노력은 이탈리아, 플랑드르, 프랑스, 독일 등 지역에 따라 독특한 성격을 보인다. 그 가운데 독일의 독자성은 고대의 수사학과 작곡이론의 체계적인 접목 시도와 그 시도의 지속성(1530년대 - 18세기 말)에 있다.

본고에서는 우선 고대의 수사학 이론과 이 이론이 특별히 독일음악이론에 접목되는 사회적・문화적 배경을 고찰한 다음, 독일음악수사이론의 발전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Rhetoric and German Music Theory


Kim, Mi-Ock



The revival of ancient study in the Renaissance can be seen first of all, along with the rediscovery of Aristotle in the late Middle Ages, in the translated books on ancient rhetoric. And rhetoric became before long the foundation of the humanistic education in general.

Parallel to this, the notion of music became also changed by the early 16th century. That is, music became belonged to rhetoric, not to the traditional quadrivium any more, due to young humanists’ attention to the expressiveness in music in relation to its text. Composers, in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began to regard themselves as creators, and devoted themselves to find the techniques for expressing text effectively through music

Characteristics of that kind of devotion varied in different regions. Among them, Germany shows the uniqueness of applying the theory of ancient rhetoric to compositional theory systematically. And this trial, began around 1530s, developed or maintained at least up to the latter part of the 18th century.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trace German musico-rhetorical theory during that period. And for the premise for that study, ancient theory of rhetoric is summarized first, and secondly, social and cultural background of 16th-century Germany is discussed in relation to the birth of that unique phenomenon.


검색어: 수사학, 음악수사이론, 음형이론, 감정이론, 부어마이스터, 베른하르트, 마테존, Rhetoric, Figurenlehre, Burmeister, Bernhard, Mattheson Key Words: Rhetoric, Figurenlehre, Luther, Germany, Burmeister, Bernhard, Mattheson


등록일자: 0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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