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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
아버지여 나의 맘을(새424, 통216) [Take my heart, O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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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여 나의 맘을(새424, 통216)

Take my heart, O Father


작사: 미상

작곡: 아이작 베이커 우드버리(Isaac Baker Woodbury, 1819~1858)


이 찬송은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으로 특히 송영으로 이용되는 일이 많다. 작사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찬송시는 1849년 “서부 보스턴의 유일교도 찬송모음집”(West Boston Unitarian Collection)에 실려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유일교에 대해서는 148장을 참조할 것). 4행시 5절로 된 이 시는 다시 바르톨(C. A. Bartol)이 편집 발행한 “성소를 위한 찬송”(Hymns for the Sanctuary)에 다시 실리면서 널리 애창되기 시작했고 이 후 미국의 여러 찬송가에 수록되었다.

이 찬송곡조 DORRNANCE는 아이작 베이커 우드버리가 작곡했고 처음에는 CHESTER라는 곡명으로 발표되었다. 이것은 1845년 우드버리가 편집하여 펴낸 “성가집”(The Choral)에서 “행복한 때와 풍부한 축복”(Sweet the moments, Rich in Blessing)이란 찬송시와 결합되어 발표되었고 그 후에 존 뉴톤(56장 해설을 참조할 것)이 지은 찬송시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은혜를 비오며”(May the Grace of Christ Our Saviour)에 붙여져 불리다가 1849년에 이 찬송시와 결합되었다.

작곡자 우드버리는 1819년 10월 23일 미국 매사츄세츠 주의 비버리(Beverly)에서 태어났다. 그는 13세 되던 해에 보스턴으로 나와 대장간에서 일하면서 음악공부를 하였다. 그는 바이올린에 심취해서 대장간의 직장을 버리고 음악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19세가 된 1838년에 그는 다시 오페라 가수의 꿈을 품고 대서양을 건넜다. 그는 1년 남짓 파리에 머물면서 성악공부를 했고 영국에 건너가 오페라 무대 연출수업을 받았다. 미국에 다시 돌아온 그는 베이 스테이트(Bay State) 합창단의 유급단원을 시발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849년에 뉴욕으로 옮긴 우드버리는 로져스 가(Rodgers Street)의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했고 “음악정론”(the Musical Review)과 “음악개척자”(the musical Pioneer)라는 음악전문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1857년에는 감리교단의 찬송가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어 많은 공적을 남겼으며 영국과 유럽 내륙 등을 돌아다니며 일을 지나치게 많이 했기 때문에 건강을 극도로 해치게 되었다. 그는 기온이 온화한 찰스톤(Charleston)으로 요양하러 내려 갔다가 그곳에 도착한지 3일 후인 1858년 10월 26일, 39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시온성의 새 악기”(The New Lute of Zion)라는 악곡 집 외에 수권의 창작곡 집을 냈다. 이 찬송시의 배경은 히브리서 10장 19절의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를 근거로 하고 있다.


(작품분석)

이 곡은 3/2박자의 8마디로 이루어졌다. 이 곡의 특징은 부드러운 진행으로 음역도 넓지 않고(e’-c#’’) 3도를 넘는 커다란 도약진행도 발견되지 않는다. 종결음도 토닉화성의 근음이 아닌 제3음으로서 불완전선율종지를 보인다. 인상적인 것은 이를 통해 전 곡은 g#’음 주위를 맴도는 형태를 띤다. 선율적으로도 처음의 4마디는 이어지는 4마디에서 거의 그대로 반복된다. 변한 것은 첫 번째 4마디그룹이 도미난트 화성으로 종결되는 반면 두 번째 4마디그룹은 토닉으로 종결되어 그에 따라 선율과 리듬이 약간 변화된 것밖에 없다. 전체는 2개의 4분음과 2개의 2분음을 하나의 음형으로 하는 윗박적 진행을 반복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단지 마디 7에서만은 마디의 강박이 2분음이 아닌 2개의 4분음을 연주하여 부드러운 선율적 종지를 유도한다.


등록일자: 2011. 1. 11

문영탁/나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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