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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토리우스 [Praetorius, Mic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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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토리우스(Michael Praetorius,  1571 Creuzburg-1621 Wolfenbüt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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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작곡가 및 이론가, 저술가. 루터파 목사의 가정에 태어나 제릅스트(Zerbst)의 라틴어 학교에서 수학하고, 1585년 프랑크푸르트/오더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음악입문은 그곳 성모교회의 오르가니스트 자리를 얻고 나서부터이다. 1595년 브라운슈바이크의 하인리히 율리우스 공 밑에서 일하면서 오르가니스트로, 1604년 궁정악장으로 취임하고, 1613-16년에는 드레스덴 궁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할레, 카쎌, 막데부르크, 뉴른베르크, 프라하 등을 여행하면서 많은 스승을 만나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당시 프라하에서 활약하고 있던 한스 레오 하슬러(1564-1612)를 알게 되었고, 베니스 악파의 거장 지오반니 가브리엘리 (1557-1612)의 음악으로부터 이태리적인 계속저음이 붙은 콘체르토 작곡양식, 리토르넬로 양식과 다중합창의 기법 등을 배우면서 이것들을 그의 음악에 받아들였다. 그는 성가곡, 독일어로 된 모테트, 시편가, 오르간곡 등 교회음악 관련 작품들을 주력하여 작곡하였다. 그리고 당대의 루터파 작곡가들이 시도하였던 칸치오날(cantional) 양식, 즉 주선율을 상성부에 두고 수직화음적이고 단순한 리듬적 양식을 하슬러, 샤인과 함께 주도적으로 이끌었으며, 당대의 다성 코랄 모테트 작곡가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1605-10년에  9권의 『시온의 음악』(Musae Sioniae)를 발간했으며, 여기에 1200곡 이상의 독일 종교노래와 가곡, 마드리갈, 시편가 등이 수록되어있다. 1615-19년에 쓰여진 3권의 『음악집성』(Syntagma musicum)은 가장 오래된 음악사전으로, 음악역사와 개요, 종교음악과 서양음악, 악기종류 , 도해 및 주법, 음악형식, 작곡법, 용어 그리고 음악연주 특히 오르간에 관한 기술은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는 네덜란드 출신의 스벨링크 (1562-1621)의 제자로 오르간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저술에 의해 1621년 푸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프레토리우스 오르간이 제조되기도 했다.

등록일자: 2005-02-01
이화병


작곡(가)사전 한독음악학회

프레토리우스, 미하엘(Praetorius, Michael, 1571/1572경-1621)

- 1571/1572년경 독일 아이제나흐(Eisenach) 근교의 크로이츠부르크(Creuzburg)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출생. 
- 토르가우(Torgau)에서 성장했으며, 체릅스트(Zerbst)에 있는 라틴어학교를 다님. 
- 1585년 오더(Oder) 강 유역의 프랑크푸르트(Frankfurt) 대학에 입학하여 신학과 인문학을 전공함. 학생으로서 대학교회인 성 마리아(St. Marien)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함. 
- 1589년 할버슈타트(Halberstadt)의 주교이며 후에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와 뤼네부르크(Lüneburg)의 공작이었던 율리우스(H. Julius) 밑에서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함. 
- 1594년 공작을 따라 그의 영지인 볼펜뷔텔(Wolfenbüttel)로 자리를 옮김. 
- 1603년 안나 라케마허(A. Lakemacher)와 결혼함. 
- 1604년 볼펜뷔텔의 궁정 카펠마이스터로 승진함. 드레스덴(Dresden)의 작센 선제후 궁정과 막데부르크(Magdeburg)와 할레(Halle)의 추기경 궁정으로의 빈번한 여행을 통해, 하슬러(H. L. Hassler)나 쉬츠(H. Schütz), 샤이트(S. Scheidt)와 같은 당대의 뛰어난 음악가들과 교류함. 
- 1621년 볼펜뷔텔(Wolfenbüttel)에서 사망.

  바로크 초기를 대표하는 독일 개신교음악의 작곡가 겸 이론가였으며 오르가니스트였던 프레토리우스는  음악공부를 거의 독학으로 했으며, 위에서 언급된 여러 음악가들과의 교류에서 얻어진 풍부한 음악적인 경험을 통해 창작에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의 작곡양식은 대체로 토르가우의 칸토라이(Kantorei) 전통에 이탈리아적인 콘체르토 방식이 결합된 것이다.
  프레토리우스는 1605년부터 1500곡이 넘는 엄청난 양의 교회 합창음악을 출판하였다. 대부분은 독일어에 의한 코랄편곡인데, 미사, 마그니피카트, 시편이나 찬가 등 라틴어에 의한 것도 적지 않다. 이들 작품은 토르가우에 있는 라틴어학교 성가대의 전통을 따른 것으로, 코랄을 고정선율로 하는 모테트 풍의 폴리포니 양식이 중심을 이룬다. 편성은 2성부에서 21성부까지 다양한데, 그 중에는 베네치아 양식을 표방하는 다중합창 형태나 성악과 악기의 결합을 시도한 것도 있다. 특히 후기의 ≪콘체르토 노래≫(Koncertgesang, 1617)나 ≪어린이 노래≫(Puericinium, 1621)에서는 이탈리아의 색채적인 콘체르토 양식(예, Gabrieli, Viadana)과 플랑드르 악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모테트 양식(예, Lasso)을 혼합한 독일의 새로운 교회음악이 전개된다. 이러한 작곡기법은 이탈리아에서 막 귀국한 쉬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1605-1610년에 출판된 ≪시온의 노래들≫(Musae Sioniae)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총 9권으로 이루어졌으며, 제6-8권에는 다른 작곡가들의 곡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2-12성부에 이르는 독일어 시편과 코랄편곡 등이 1244곡(그 중의 4곡은 오르간용임)이나 수록되어 있다. 기법적으로 이것들은 단순한 2성부 대위법과 4성부 화성작품에서부터 두터운 편성의 것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성탄절을 위한 코랄 편곡인 ≪즐겁게 환호하며≫(In dulci jubilo)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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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1607년에 뉘른베르크(Nürnberg)에서 출판된 ≪시온의 노래들의 모테트와 라틴어 시편가들≫(Musarum Sioniarum Motetae et Psalmi latini)이 있는데, 이곳에는 프레토리우스가 쓴 36개의 모테트와 각각 한 곡의 미사와 마그니피카트가 들어 있다. 이 외에도 다른 작곡가가 쓴 6개의 모테트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1611년에 볼펜뷔텔에서 출판된 ≪시온의 대 찬미가≫(Megalynodia Sionia)도 있는데, 이것은 총 104개의 미사 악곡들을 수록하고 있다. 1611년에 함부르크(Hamburg)에서 출판된 ≪시온의 찬미가≫(Hymnodia Sionia)에는 145개의 찬미가 악곡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6개는 오르간을 위한 것이다.
  1613년에 볼펜뷔텔에서 출판된 ≪우라니아≫(Urania)에는 24개의 4성부 독일어 교회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1621년에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에서 출판된 ≪어린이 노래≫에는 14개의 다성부 독일어 교회노래와 몇 개의 콘체르토 노래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특별한 기회를 위해 작곡된 작품이 몇 개 있는데, 예컨대 작센 공작인 요한 2세(Johann II)를 위한 ≪달콤한 음향≫(Euphemia Harmonica)과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의 울리히(Fr. Ulrich)와 소피(A. Sophie)를 위한 ≪축혼가≫(Epithalamium, 1614), 헤센(Hessen)의 모리츠(Moritz) 백작을 위한 ≪콘체르토 노래≫, 그리고 각각 5개의 노래성부와 기악을 위한 ≪시편 제116편≫(Der 116. Psalm, 1623)이 그것이다.
  기악작품으로는 1612년에 볼펜뷔텔에서 출판된 ≪테르프시코레≫(Terpsichore)가 있는데, 여기에는 파리의 작곡가들이 쓴 춤곡선율(예, 쿠랑트, 파사메조, 바레 등)이 프레토리우스에 의해 4-6성부로 편곡되어 있다. 이 곡집은 312번까지로 되어 있으나, 그 중에는 몇 곡이 하나의 번호로 묶여져 전체 곡수는 500곡을 넘는다. 그 가운데 약 80곡은 이 작품집을 편찬하는데 협력한 것으로 보이는 카루벨(P. F. Caroubel)의 것이다. 이곳의 작품들은 비교적 단순하며, 호모포닉적인 형태로 작곡되었다.
프레토리우스의 오르간작품으로는 우선 루터의 독일어 시편노래에 기초한 3개의 커다란 판타지가 있다: ≪내 주는 강한 성≫(Ein feste Burg ist unser Gott), ≪우리 주 그리스도가 요단강에 오셨도다≫(Christ unser Herr zum Jordan kam), ≪우리는 모두 한 하나님을 믿습니다≫(Wir glauben all an einen Gott). 그리고 이 외에도 같은 시를 사용한 2개의 변주곡인 ≪자, 나의 영혼아, 주를 찬양하라≫(Nun, lob mein Seel, den Herren)와 그리고 6개의 찬미가 변주곡이 남아있다. 이것들은 ≪시온의 노래들 VII≫(1609)과 ≪시온의 찬미가≫(1611)의 파트보들에 수록되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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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4-1619년에는 그의 유명한 이론서적들도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17세기초의 음악사정을 자세하게 설명한 3권의 『음악이론 집성』(Syntagma Musicum)이 대표적이다. 제4권은 출판되지 못했는데, 원래 그곳에는 유명한 이론가들의 작곡이론이 실릴 계획이었다. 제1권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교회음악과 관련한 라틴어 논문이, 두 번째 부분에서는 정치적이며 세속적인 노래와 일반적인 음악학 관련 글이 실려 있다. 제2권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악기들의 설명과 용어 그리고 분류가, 두 번째 부분에서는 특별히 관악기와 현악기가, 세 번째 부분에서는 옛날의 오르간이, 네 번째 부분에서는 최근의 오르간이, 다섯 번째 부분에서는 독일의 유명 오르간들의 스탑 배치가 언급되어 있다. 제3권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성악음악과 기악음악 장르의 명칭과 특징이, 두 번째 부분에서는 멘수라 음악의 기보법과 박자, 그리고 템포표시가, 세 번째 부분에서는 새로운 음악용어들과 계속저음의 사용요령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끝에는 프레토리우스에 의해 출판된 작품 카탈로그가 들어 있다. 『음악이론 집성』은 프레토리우스 당시의 음악과 연주를 살피는데 더없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프레토리우스의 전 작품은 블루메(Fr. Blume)에 의해 볼펜뷔텔과 베를린에서 총 21권으로 출판되었다. 프레토리우스의 작품들에는 자주 M. P. C.라는 약자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자기 이름과 그의 고향의 첫 글자인 ‘Michael Praetorius Ceruzburgensis’를 줄인 것임과 동시에 ‘Mihi Patria Coelum’(내 고향은 하늘나라)을 줄인 것이다. 

참고문헌

Blume, Fr. M. Praetorius Creuzburgensis. Wolfenbüttel, 1929.
Forschert, A. Das Spätwerk d. M. Praetorius..., =Berliner Studien zu Musikwissenschaft, Veröffentlichung der musikwissenschaftlichen Seminars der Freien Universität. Berlin I, Berlin, 1959.
Grimm, H. Meister der Renaissancemusik an der Viadrina. Frankfurt an d. Oder u. Berlin, 1942.
Gudewill, K. H. Schütz und M. Praetorius in Musik und Kirche 34 (1964), pp. 253-264.
Gurlitt, W. M. Praetorius(Creuzburgensis), sein Leben und seine Werke. Diss. Leipzig 1914, Teildruck Leipzig, 1915.
Ilgner, G. Die lateinischen liturgischen Kompositionen von M. Praetorius, Diss. Kiel, 1940.
Riemann, H. Handbuch der Musikgeschichte II/2. Leipzig, 1912.

등록일자: 2010.1.26.
[나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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