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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링크 [Sweelinck, Jan Pietersz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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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링크(Jan Pieterszoon Sweelinck, 1562 암스테르담-1621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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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작곡가. 오르간주자. 베니스에서 수학했다. 짜를리노(1517-1590)에게 사사했으며 그의 화성론을 심도 있게 연구했다. 1580-1621년 부친의 뒤를 이어 암스테르담의  우데 교회(Oude Kerk) 의 오르간 주자로 한평생을 보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북독일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쳐, 북 독일악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오르간 분야에 있어서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으며, 세속과 종교 샹송, 캐논, 라틴어 모테트, 시편가 등 교회음악에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르네상스 부르고뉴 악파의 영향을 받아 성악적 다성음악 기법을 도입하여 단선율의 시편가를 다성부 합창곡으로 편곡한 작곡가로 유명하다. 그의 건반악기 작품으로는 판타지아, 리체르카레, 토카타와 변주곡 그리고 푸가형식의 코랄과 코랄편곡 등이 있다.
그는 이태리 작곡가 안드레아 가브리엘리(1510-1586)의 영향을 받았으며, 영국의 존 불(John Bull, 1562-1628)에게도 건반음악기법을 배워 당대의 토카타와 변주곡 그리고 푸가형식의 오르간 음악의 거장으로 손꼽혔으며, 많은 문화생을 배출하였다: Paul Siefert (1586-1651), Jacob Praetorius d. J. (1586-1651), Samuel Scheidt (1587-1654), Heinrich Scheidemann(1596-1663).
 
등록일자: 2005-02-01
이화병


<font color="#fefe00" size="4"><b>작곡(가)사전</b></font><font color="#fefe00" size="2"><b> 한독음악학회</b></font>

스벨링크, 얀 피테르스존(Sweelinck, Jan Pieterszoon, 1562-1621)

- 1562년 네덜란드 데벤터(Deventer)에서 출생.
- 1577년(또는 1580)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암스테르담(Amsterdam)의 유명한 우데 교회(Oude Kerk)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함.
- 1578년 교회에서 오르간 음악이 금지되면서 시(市)의 음악 담당자가 됨.
- 1594년 생애 최초의 성악작품 18곡의 5성부 ≪샹송≫을 출판함.
- 1621년 평생 동안 머물렀던 암스테르담에서 사망.

  스벨링크는 동시대와 후세대 음악가들에게 개혁교회의 시편가의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다윗의 시편가≫(Pseaumes de David, mis en musique)라는 제목으로 그는 1604년에서 1621년까지 네 번에 걸쳐 시편가 전체(150편)에 4-8성부의 음악을 붙여 출판했다. 그의 시편가의 고정선율로 사용된 선율과 가사는 종교개혁가 칼뱅(J. Calvin)의 가르침에 따라 예배용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악곡집의 가사와 음악의 기초가 되는 ≪제네바 시편가≫(Genevan Psalter, 1562)는, 칼뱅의 지시에 따라 클레몽 마로(C. Marot)와 테오도르 드 베제(T. d. Bèse)가 구약성경의 시편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는데, 가장 큰 특징은 모두 운(韻)에 맞추었다는 점이다. 그 이후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운에 맞춘 시편가가 만들어졌다. 운에 맞춘 시편가는 개혁교회(장로교 포함)의 특징적 회중찬송가가 되었다. 네델란드 사람들은 다테누스(P. Dathenus)가 네덜란드어로 번역한 시편가에 스벨링크가 음악을 붙일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는 프랑스어 원본 가사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는 번역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널리 알릴 수 있다고 여겼다. 그 생각이 정당했다는 것은 당시의 문서와 독일에서 출간된 선곡집이 증명한다.
   스벨링크는 ≪제네바 시편가≫ 전체에 음악을 붙인 첫 번째 사람이 아니었다. 구디멜(Goudimel)은 이미 그 작업을 여러 번 했으며, 그의 방대한 작품들은 다른 사람들의 것을 양적으로 훨씬 능가한다. 하지만 음악적인 면에서는 스벨링크의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구디멜의 음악은 칼뱅이 생각했던 단순한 교회음악의 이상에 충실했고, 스벨링크의 것은 더 예술적인 폴리포니에 치중한 것이었다.  
≪제네바 시편가≫는 본래 회중찬송가로 고안된 것이라서 가사는 여러 절로 나뉘며, 각 절은 동일한 멜로디를 노래한다. 스벨링크의 시편가들은 오늘날 용어로 하자면 대부분 “찬송가 편곡” 정도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당시 개혁교회는 회중찬송가로 시편가만 부르도록 허락했다. 그것도 예배에서 단순율로만 부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스벨링크는 그러한 찬송가에 다양한 방식의 화성적, 대위법적 음악을 붙였던 것이다. 그의 시편가는 그가 할 수 있는 폴리포니의 가능성을 모두 시험하는 것이었다. 후기에 작곡된 것들은 8성부의 호모포니적 경향의 이중합창이 증가한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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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벨링크는 그의 작품 중 많은 부분에서 1절만 작곡하고, 나머지 절은 연주자들이 같은 멜로디를 연주할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하도록 하였다. 그는 가사에 있는 그림음악적 음형이 될만한 요소나 그 밖의 작곡의 출발점이 될 만한 것들을 이용하여 그것을 세밀하게 음악으로 풀었다. 스벨링크는 고정선율로 사용한 ≪제네바 시편가≫의 선율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작곡에 이용했다. 그것들은 옛 모테트처럼 작곡되거나, 여러 방법으로 변주되기도 하며, 호모포니 단락에 의해 자주 이완되는 대위법적인 악장의 주제적 발단으로서도 사용되었다.
  1678년부터 암스테르담은 예배에서 음악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칼뱅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인해 스벨링크의 시편음악은 -다성음악이기에- 예배의식용이 아니었다. 교회들은 시에 속해 있었으며 스벨링크의 시편가는 일요일의 예배 이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즉 그 음악은 평생 동안 활동했던 우데 교회의 정기적 모임이었던 음악적 경건회에서 연주하였다. 이는 스벨링크가 재능 있는 음악 아마추어들과 개최한 현대적인 교회음악회의 초기 형태였다. 교회에서 다성음악과 오르갠 음악을 몰아낸 칼뱅교파는 예배당에 뜯어내지 않은 상태로 있던 오르갠, 합창단, 악대가 같이하는 교회음악회를 창시하는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북부 독일에서 일어난 북스테후데 중심의 저녁음악회(Abendmusik) 역시 비슷한 성격의 교회음악회였다.  
  프랑스어 시편가들 이외에 스벨링크가 쓴 교회적 성악곡은 라틴어로 쓴 ≪거룩한 노래≫(Cantiones Sacrae, 1619)가 있다. 이 작품집에는 별도로 기록된 계속저음이 사용되었는데, 이 계속저음은 당시에 현대적인 작곡기법에 속했다. 이 작품과 비교했을 때 스벨링크의 세속 성악음악은 약간 시대에 뒤떨어진 경향을 보인다. 이에 속하는 것으로 수많은 샹송, 몇개의 이탈리아 마드리갈, ≪2성부에서 3성부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노래≫(Rimes Françoises et italienes, 1612)와 여러 작곡가들을 위한 특별한 음악이 있다(친구 작곡가 요한 스토베우스[Johann Stobäus]의 결혼식을 위한 곡 등). 그의 친구들은 스벨링크를 우선 성악 작곡가로  여겼으며, 이는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의 성악곡은 악파를 형성하지 못하고 네덜란드 성악 폴리포니 대전통의 마지막을 잇게 되었다. 
19세기에 스벨링크가 재발견되었을 때 그는 위대한 오르가니스트, 오르간 작곡가, 오르간 제작자로 생각되었다. 그는 많은 주요 독일 작곡가들을 제자로 두었는데, 그 중 바흐의 오르간 음악의 발생에 영향을 준 샤이데만(H. Scheidemann)과 샤이트(S. Scheidt)도 있다. 스벨링크의 건반음악은 그가 후대에 중요한 작곡가로 평가받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의 작품 중의 성악곡은 오르간 음악의 그늘에 가릴 정도였다. 그의 몇몇 건반음악작품은 산재해 있는 필사본과 더불어 확실치 않게 전해지는 부분들로 인해 그 신빙성을 의심받기도 한다.
  우데 교회에서 의무적으로 행했던 음악회는 암스테르담에서 인기 있는 행사가 되었고, 그에게 좋은 오르간 작품을 쓰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음악회를 통해 두 그룹의 오르간 작품들이 발전하였다. 첫 번째 그룹은 판타지, 토카타와 같은 자유스러운 장르이며, 또 다른 그룹은 교회적 선율을 바탕으로 한 변주곡 장르이다. 후자에는 쳄발로를 위해 작곡되었다고 여겨지는 세속노래 변주곡도 해당된다.
대위법적인 판타지들은 스벨링크의 가장 큰 기악곡에 속한다. 이 곡들은 수많은 다른 작곡가의 판타지와는 구별된다. 단일한 테마를 가진 이 음악은 단조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막대한 창의적 노력이 필요했다. 스벨링크의 대가다움은 전형적인 기악곡 연주음형을 성악적 성격의 대위법 음악에 접목시킨 데에 있다. 이는 곡의 길이를 의미 있게 채운다. 메아리 판타지는 이와 반대로 음향적 효과를 위해 복잡한 기능이 제한되었다. 자유스러운 형식의 오르간 작품 중 가장 큰 그룹은 토카타인데 이는 매우 탁월한 음형연주 부분들이 자주 즉흥적인 성격을 드러내며 잘 선정된 형식적 계획에 따라 끊임없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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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벨링크의 토카타는 그의 독일 제자들에게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스벨링크의 판타지와 변주곡을 학습한 내용을 보여준다. 대위법적 악곡과 기악적인 기교의 완벽성은 판타지에서 매우 중요하며, 이 점이 더욱 향상된 형식으로 이끄는 바탕이 되었다.
  그의 세속적 노래 변주곡에서는 영국의 버지날 음악의 영향이 보인다. 반면 교회적 선율의 변주곡에서는 그 영향이 적다. 스벨링크는 버지날 음악의 연주음형을 수용하여 더욱 발전시켰다. 그 특징은 교회적이라 생각되는 대위법이 적게 나타나고, 춤곡적인 성격과 현대적 화성이 두드러지는 점에 있다. 

참고문헌

Faber, Rudolf. Hartmann(Hrsg.), Philip. \"Jan Pieterszoon Sweelinck.\" Handbuch Orgelmusik, Kassel, 2002.
Seedorf, Thomas. \"Jan Pieterszoon Sweelinck.\" Metzler Komponisten Lexikon, Stuttgart, 1992.
Vente, Marten Albert. Vlan, Christiaan. Annegarn, Alfons. \"Jan Pieterszoon Sweelinck.\"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Bd.12, Kassel, 1989. 

등록일자:2010.1.18
[장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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