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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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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李東勳, 1922. 5. 26 평북 의주-1974. 11. 14 서울)

이동훈은 목사 이기혁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신의주 동공립 중학교 입학하면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동경 제국고등음악학교을 마치고 연구과에 진학하지만 1944년 중퇴했다. 동경 시절 그는 합창도 열심히 배웠다. 1944년 귀국한 그는 6월 이후 계정식, 김천애, 차정순 등과 함께 중국의 주요도시를 순회하며 연주했다.
서울에서의 활동은 1946년 5월 고려교향악단 제1바이올린 주자로 시작했다.  1946년 9월부터 중앙신학교 강사, 48년 4월부터 대한신학교 조교수, 49년 6월에는 새한 교향 합창단 창립단장 겸 지휘자로 일했다. 이 시기에 그는 성가작곡을 시작했다. 그 결과물들은 1951년 『실로암 물가의 흰 백합』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52년 6월에는 교성곡 『자유찬가』를 작곡, 7월에 발표했다. 1954년에는 합창조곡「피난처」를, 1956년에는 『여성합창곡집』, 1956년에는 합창조곡 『삼손의 이야기』를 작곡해 발표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동훈은 1954-58년에 경희음대 강사, 58-70년에 숙명음대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1955년 『바이올린 교칙본』과, 바이올린 곡 집 11종을 편저, 출판했다.
이동은 합창지휘자로서 많은 활약을 했다. 그는 필그림 합창단을 세워 연주활동에 힘썼다. 이 합창단은 1961년 음반을 만들었다. 이동훈은 1968년부터 한국합창연맹 총무이사로 취임하여 수년간 일했다.
1967년 찬송가 개편위원회 음악위원으로, 69년 한국복음전도대회 연합성가대 지휘자로, 74년 엑스폴로 74음악분과 위원장으로, 74년 서울교회음악연구회를 설립했고, 한국선교합창단 지휘자로 일했다.
이동훈이 작곡한 것은 교회에서 잘 사용될 수 있는 찬송가와 성가곡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찬송가들은 아직도 한국교회에서 불린다(「어둔 밤 마음에 잠겨」, 「가슴마다 파도친다」 등). 반면에 그의 합창곡들은 비교적 덜 불리는 편이다. 이는 그의 음악이 일반 성가대가 하기 어려운 데가 있는데, 그가 지도하던 필그림 합창단이 교회 합창단의 성격이 아닌, 전문성을 띤 합창단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필그림 합창단은 주로 음대생으로 되어 있었으며, 대체적으로 무반주 합창음악을 노래했다. 연주곡목은 16세기 서양의 아카펠라 음악이 아니라, 흑인영가나 새로운 성가곡들이었다. 레퍼토리 부족 때문에 이동훈은 스스로 편곡하여 연주하는 일이 많았다.     

이동훈의 문헌:
『교회합창곡집』,기독교음악사(1949)
『실로암물가의 흰 백합』(1951)
『자유찬가』교성곡(1952)
『피난처』합창조곡(1954)
『애기별』동요곡집, 기독교음악사(1954)
『바이올린 교칙본』, 기독교음악사 (1955)
『삼손의 이야기』합창조곡, 기독교음악사(1956)
『여성합창곡집』(1956)
『개편찬송가』, 5곡의 이동훈 찬송가가 실려 있음, 한국찬송가위원회(1967)

이동훈의 남아있는 작품들은 그의 사후에 발간된 『여호와는 나의 목자』(기독교음악사, 1999)에 실려있다. 이것은 완벽한 모음집이 아니다. 예를 들어 꼭 있어야할 피아노 반주는 없고, 성악성부들만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작품들이 다 실려 있다. 찬송가, 성대가 음악, 합창조곡 삼손, 찬송가편곡, 동요, 민요 편곡 등의 음악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유덕연, 이동훈의 교회음악에 관한 연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0.

등록일자: 200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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