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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스, 요한 요셉 [Fux, Johann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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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요셉 푹스, (Johann Joseph Fux,  1660.2.13  St. Marein- 1741.2.13.비엔나)

푹스는 오스트리아 상트 마라인 지방의 힌터펠트(Hirtenfeld)에서 농부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유년시절과 학업에 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으나 『파르낫소에의 계단 Gradus ad Parnassum』의 서문에서 푹스는 음악에 대한 그의 강렬한 열망이 이미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지방 농부의 3남매 중 맏아들인 그가 그 당시 이태리 음악가들이 영향력을 행사했던 비엔나 궁정의 최고 악장이 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한 귀족들의 후원과 장학금에 의해 학업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푹스의 본격적인 음악수업은 이태리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되는데, 코렐리와 볼로냐 악파, 또한 토렐리의 영향을 그의 초기 기악작품들「트리오소나타 K. 351/2」, 「rondo a 7」의 양식적 특징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음악가로서 푹스의 경력은 귀족들과 황제의 후원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1696년부터 쇼텐 교회(Schottenstift)의 오르간주자로서 일함과 동시에 레오폴드 황제의 궁정작곡가(1698)로 임명되어 활발한 음악활동을 펼친다. 그가 오스트리아 정부 사무서기관의 딸인 클라라 줄리앙 쉬니쯔바움(Clara Julian Schnitzbaum)과 결혼한 것도 이 시기(1696)이다. 1702년 궁정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쇼텐 교회의 오르간 주자직을 그만두었다. 1705년부터 1715년 사이에는 성 슈테판(St. Stephan)성당의 악대장직을 궁정업무와 겸임하였다. 당시 황제였던 요셉1세의 갑작스런 죽음(1711)과 새로운 황제 칼6세의 취임에 따른 궁정악단의 재편성으로 말미암아 푹스는 1713년 궁정의 부악장이 되었고 이때 재정상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요셉1세의 미망인인 왕비 아말리에(Amalie)의 악단을 6-7년간 이끌게 된다. 그리하여 푹스는 1713/1714년 3개의 중요한 음악직무(성당, 왕궁, 여왕의 악단)를 겸임하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되며 1715년부터는 다시 왕궁의 악대장으로 임명되어 그가 죽을 때까지 이 직무를 수행한다. 결국 푹스는 열렬한 음악애호가로 알려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세 황제(레오폴드1세, 요셉1세, 칼6세)의 후원 하에 음악활동을 펼친 셈이다. 
푹스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오스트리아 후기 바로크 음악의 거장이다. 그는 생존 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교회음악과 오페라 등의 화려한 바로크음악을 통해 18세기 전반기 비인 궁정 음악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푹스는 무엇보다도 교회음악가였고 특히 전통적 대위법양식의 옹호자이다. “오스트리아의 팔레스트리나”로 불리는 그는 구양식(stile antico)을 다시 부흥시키려 하였으며 이러한 정신은 유명한 대위법 학습서 『파르낫소에의 계단』(Gradus ad Parnassum, 1725)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라모의 『화성론』(1722)과 거의 동시대에 나타난 것이다. 이 책은 요셉(푹스 자신을 제자로 상징)과 알로이시우스(팔레스트리나를 스승으로 상징)의 문답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체 양식으로 라틴어로 쓰여 졌으며 모든 대위법적 작법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정리되었고, 곧 독일어, 이태리어, 프랑스어, 영어로 번역되어져 대위법의 기본 지침서로 여러 세대를 걸쳐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이 책으로 대위법을 익힌 작곡가로는 누구보다도 고전시대의 거장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전통고수자로서의 그의 특성은 19세기 체칠리아주의의 관점에서 푹스에 대한 평가를 일면적으로만 치우치게 하였으나 그의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볼 때 여러 다양한 특성들을 내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등에서 나타나는 나폴리 오페라의 감각성과 현대적인 다카포 양식, 또 몇몇 아리아들에서 보여주는 개성적인 표현력은 그가 결코 그 당시 절정을 이루었던 기교적이고 감각적인 나폴리 오페라양식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적 양식의 자취는 또한 모티브작업과 유기적 형식의 시도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며, 더욱이 그의 기악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민속 음악적 요소의 도입은 도래하는 고전시대음악의 특성을 선취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든 요소는 그의 작품에서 옛 양식적인 특성과 종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전통적인 대위법적 음악은 호모포니적인 음악이 주류를 이루었던 이후 수십 년간 전고전시대의 비엔나에서 그 영향력을 잃지 않았고, 이는 이후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의해 이룩된 호모포니와 대위법적 음악의 종합적 양식인 고전주의의 이상적 형식을 준비시키는 발판이 된다. 그의 제자로는 G. 무파트(G. Maffat), J. D. 쩰렌카(J. D. Zelenka), Chr. 바겐자일(Chr. Wagenseil), I. 홀쯔바우어(I. Holzbauer) 등이 있다. 
 작품으로는 19개의 오페라가 있는데, 그 중『콘스탄짜와 포르텟자』(Constanza e Fortezza), 『알치나를 물리친 안젤리카』(Angelica, vincitrice d' Alcina),『엘리자』(Elisa)와 같은 것들이 있다. 10개의 오라토리오와 미사가 있는데, 『미사 카노니카』(Missa canonica), 『산 카를로의 미사』(Missa di S. Carlo)도 포함되어 있다.  레퀴엠, 모테트, 관현악모음곡(Concertus musico-instrumentalis) , 우베르뛰르, 신포니아, 트리오소나타,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 등도 있다. 이론서로서는 대위법 학습서인 『파르낫소에의 계단』(Gradus ad Parnassum, 1725)과  그가 성 슈테판 교회에 봉직시 합창단의 교육을 위해 쓴 『성악 지침서』(Singfundament)가 있다. 

작품전집:
H. Federhofer/ O. Wessely(편찬),Gamtausgabe, Graz/Kassel 1959ff. 

등록일자: 2005-05-07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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