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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 [Schumann, Robert Alexa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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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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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과 부인 클라라


1810 쯔비카우(Zwickau)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출판업자였으며 가끔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했다. 7세 되던 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12세에 첫 작품을 작곡했다. 곁들여서 그는 시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죽은 후 그는 어머니의 희망에 따라 대학에 진학하여 법학을 공부했다(라이프치히 대학, 하이델베르크 대학).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당시의 유명한 피아노 교사였던 비크(Friedrich Wieck)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 그러다가 음악에 기울어져 1830년부터는 아예 학업을 포기하고 음악에 전념한다. 드디어는 그의 어머니도  음악가가 되겠다는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는 좋은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과도한 욕심에 사로잡혀 기계로 손가락 연습을 하다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면서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는 작곡과 평론에 전념한다. 1834년에는 신음악잡지(Neue Zeitschrift fur Musik)를 설립하고 1844년까지 그 일을 했다. 그는 평론작업을 통하여 다른 작곡가들을 세상에 소개하기도 했다(예: 슈베르트, 브람스, 베를리오즈). 그의 문필작업은 음악에서의 낭만주의 미학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낭만주의는 당대의 문학가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매우 크다. 또한 문학의 영향은 그의 작품에까지 들어 있다. 

1840년 그는 자신의 피아노 선생이었던 비크의 딸 클라라(Clara Wieck) 슈만과 결혼한다. 이 결혼은 장인의 반대를 물리치기 위해 그를 법정에 고소하여 재판에 이긴 후 성취한 것이었다. 부부는 여덟 자녀를 낳았다. 하지만 부부간의 관계는 쉽지 않았다. 부인은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반면에 그의 작곡 작업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즉 그는 부인의 그늘에 묻혀지내야 했다. 그는 부인의 연주여행을 즐겨 따라 다니는 편도 아니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음악으로 음악계를 혁신하려 했으나 그런 기회가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비엔나 고전주의 음악가들을 열렬히 숭배했고, 당대에 유행하던 "맥빠진" 음악(예: 마이어베어의 『위그노』)들을 비판하였다. 1843년 멘델스존은 그를 작곡교사로 라이프치히로 초빙한다. 조금 후 그는 드레스덴 합창협회(Verein fuer Chorgesang)를 조직한다. 1850년에는 뒤쎌도르프의 시립 음악감독에 취임한다. 말년에 그는 정신적 질병에 시달리다가 본 근처의 엔데니히(Endenich)에서 1856년에 사망한다.

슈만의 음악은 섬세하고 꿈꾸는 듯한 낭만적 음악에는 강하지만, 큰 규모의 음악에서는 구성력이 약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작품들은 다음과 같이 시기적으로 구분된다:

피아노 작곡시대(1839년까지)

문학에 심취해 있었던 그는 문학작품으로부터 영향받은 피아노 작품들을 작곡한다. 『아베크(Abegg) 변주곡』, 『파피용(papillons)}, 『파가니니 연습곡』, 『다윗 동맹원 무곡』, 『카니발』, 『크라이슬러리아나』, 『어린이 정경』, 『노벨레텐』 등이 모두 그러한 것들이다. 그는 시(문학)나 음악의 목표는 서로 같으며 단지 그 방법만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 곡들 중에는 소품적이고 시적인 것이 많다. 반면에 소나타 f#단조, f단조, g단조, BACH 테마에 의한 6개의 푸가, 그리고 4개의 푸가들은 전통적 형식을 배우면서 나타난 곡들이다. 교향적 연습곡은 피아노의 음향을 오케스트라의 그것처럼 확대시키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가곡의 해(1840년)

부인 클라라와 결혼하던 이 해에는 140여편의 가곡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후에 작곡된 가곡들은 결코 이 가곡들이 가진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 두개의 『리더크라이스』(Liederkreis"노래묶음"의 뜻,op.24와 op.39), 『미르테 꽃』, 『여인의 사랑과 생애』, 『시인의 사랑』의 연가곡들이 작곡되었는데, 거의가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들이다. 꿈꾸는 듯한, 여린 그의 가곡선율은 마치 피아노를 위한 성격소곡에 가사가 붙여진 듯하다.

실내악의 해(1842년)

현악사중주, 미아노사중주, 피아노오중주 등을 작곡한다.

오라토리오의 해(1843)

슈만은 세속적 대본에 곡을 붙임으로써 연주회장을 위한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킨다. 『천국과 페리』, 『파우스트의 장면』이 그것들이다.

1844년 이후에는 합창음악, 무대음악, 심포니(라인강), 미사, 레퀴엠 등을 작곡했으나, 별로성공적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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